법고가 새롭게 만들어져있다.
제3공화국시절 내노라 하는 요정이 많았지만 3대 요정의 하나인 대원각은
80년대 들어서 회갑연이나 칠순 잔치를 할라치면 상다리 휘어지게
한상 차림을 몇 겹 얹어 어깨 위에 메고 손님을 맞이하던 유명한 요정이었다...
새로 칠한 화려한 법고
나도 회갑연이나 칠순잔치에 몇 번 가 봤던 대원각은 그 당시 기억으로
여름엔 계곡에서 많지는 않지만 물이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는 경치가 좋은 곳이라 생각되었다...
그렇게 유명한 술과 음악과 여자가 어우러지는 화려한 요정이 어느날 갑자기 문을 닫는다...
(나무 기둥에 새겨진 용의 형상이 화려하다...)
대원각 소유자인 김영환 보살이 '무소유'를 읽고.
법정스님께 대원각의 모든 것을 시주하려고 하였지만
무소유를 강조하며 실천하는 법정 스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 번의 간곡한 요청으로 법정스님은 길상사라는 절을 세워
마음의 도량으로 삼는다...
고 김영환 보살은 1932년 16세의 꽃다운 나이에 진향기생으로 시작하여
어느날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인 백석과의 만남으로 긴나긴 기다림을 가진다...
(방문한 날에는 극락전 현판을 달고 있었다...)
그 하룻밤의 사랑은 백석집안의 반대가 아주 심했다...
자야는 백석집안의 반대로 인연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헤어져 있으면서
죽는 날까지 월북 시인 백석을 기린다....
(제 3공화국시절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 건물...)
하룻밤의 사랑으로 서로의 마음을 간직한 채 백석은 고 김영환 보살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한지에 써서 편지와 함께 남기고 홀로 떠나간다...
백석과의 못다한 사랑을 간직한 채 자야는 성북동
지금의 길상사 터에서 첨암정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한다....
수많은 정치인과 많은 단골의 구애를 뿌리치고 백석을 기다리며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운영하다... 1997년12월14일
싯가 1000여억원의 7000여평 넓은 땅을 조건 없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다....
그 당시 싯가 1000억여원에 이르는 많은 돈을 아무 조건 없이 시주한다는 것은
그 당시 상상하기 힘든 결정 이었을 것이다...
자야는 백석을 기리며 시인을 위하여 백석상을
만들기도 하였던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아는 기생이었다...
중국 변방의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이야기인 자야오가(子夜五歌)라는 이백의 시에서 따 왔다는 자야는
길상사라는 절을 열 때...법정 스님으로부터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과 염주 하나를 받는다....
1999년11월14일 그녀는 그리움을 간직한 채 길상헌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84살의 적지도 많지도 않은 생을 살다 간 자야...
젊을 적의 백석을 그리워하며 모든 것을 희사한
기쁨으로 가볍게 생을 마감했으리라....
나는 자야의 아름다운 사랑이 깃든
길상사의 이 돌 앞에서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길상사에서의 오후는, 작지만 정감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이
값지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길상사를 떠나기 직전 화장실에 들렀더니 넓고 정감이 가는 목재로
만들어져 있었다...유리창이 시원하게 펼쳐져 하늘이 보이는 화장실....
생리적인 것을 떠나 마음의 편함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