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의 현재의 풍경

[스크랩] 낙산사 홍련암

공 합장 2009. 8. 4. 10:47

낙산사 + 홍련암 ** 관련제목검색
  2009년 8월 03일 월요일, 오후 23시 57분 11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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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이 번져  절 대부분이 화마에 휩쌓여  보물 문화재를  비롯

        여러 전각이 소실 되었던  

 

            강원도  명찰       낙산사     洛山寺

 

         복구 공사가 거의  다 끝나  옛 모습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

 

        카페 아리수 운영자 님의 그림  +   여러 블로그  글, 그림을 더해   전달합니다.

 

 

 

 

 

 

 

 

 

 

 

 

 

 

 

 

 

 

 

           무지개 모양의 석문(石門)인

 

               홍예문 (虹霓門) 누각은 산불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복원됨.

 

 

 

 

 

  

 

 

 

 

 

 

 

 

 

낙산 배 시조 나무의 유래를 기록한 비. 

 

 

유명한 낙산 배의  시조로 특별 보호되고 있는 배나무

 

 

 

 

 

 

 

 

 

 

 

                        사천왕 四天王  상

 

 

범종각

 

 

 

 

 

            빈일루

 

 

 

  

 

 

   원장:  원통보전 주위에는 조선시대 초기의 담장인 원장(垣墻)으로 둘러 쌓여있습니다.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우리 나라의 대표적 담장 이랍니다.

 

 

 

 

 

원통보전과 앞에 세워진 칠층 석탑  (보물 제499호)

 

 원통보전은  관음 보살을 모신 전각

 

 

 

원통보전을 둘러싼 담장

 

 

 

                          망망 대해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해수 관음 상.

 

   바다의 배들과 어부들을 보살피는 자비로운 해수 관음 보살 .   

   예로 부터 어부의 어머니, 아내들이 바다로 나간   어부들의 안전을  빌어 기도했던 간절한 염원이

    낙산사  절 창건을 이루었고   해수 관음상이 그  절실한 기원의 핵심.

 

    유럽 여러 나라에도  해변 성당의 마리아 상에  어부들의 안전을 빌었던 것과  똑같지요.              

 

 

 

 

 

 

                 

           높이 16 m,  둘레 3.3  m,   거대한 해수 관음상  海水 觀音像

 

 

해수 관음상에서 보이는 낙산 해수욕장

 

       ◈   洛山寺  낙산사 

  3 대 관음 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 (義湘)대사가  세웠으며,
 
 
이 절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의상 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의 자리이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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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홍예문

 

조선시대의 석문, 세조 13년(1467년) 왕이 낙산사에 행차하여 세운 문으로 무지개 모양의 석문.
 
 홍예문을 이루고 있는 26 개의 화강석은 당시 강원도 내의 고을 수를 표시한 것이라 전한다.
 
 
 
옛 대가들의  낙산사 글과 그림
 
진경 산수  겸재  정선의  그림
 

정선, 지본담채, 42.8 × 56.0cm

배꽃 핀 봄 날의 낙산사 

금강산을 여러차례 방문하며 많은 그림을 남겼던 겸재는 금강산을 거쳐 낙산사에 들른 것으로 보인다.
  절 주변에 배 꽃이 가득 핀 걸로 보아 봄의 절정기, 4월 무렵인 것으로 보인다.
 낙산 배로 유명하듯 낙산사에 가면 배 시조목을 만날 수 있다.

송강 정철은 배꽃(이화)이 지고난 이후에 낙산에 가 일출을 보고 《관동별곡》에서 그 풍경을 읊고 있다.

이화는 벌써 지고, 접동새 슬피울 제
낙산 동반으로, 의상대 올라 앉아
일출을 보리라,
 
 밤중만 일어나니
상운이 집피는 동, 육룡이 받치는 동
바다에 떠날 제는, 만국이 어리더니
천중에 치뜨니, 호발을 헤리로다.

아마도 열구름, 근처에 머물세라.
시선은 어디가고, 해타만 남았으니
천지간 장한 기별, 자세히도 할셔이고

예로부터 낙산 일출은 그 풍경이 장관으로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노래하고 그림으로 남겼다.
 겸재 또한 낙산사에 들러 낙산 일출을 보고 인상 깊었던 듯
금강산 일대 해악 진경 8폭을 병풍으로 그릴 때에 이 작품이 들어 있다. 

  여기 저기에서 끌어 모아 합치다 보니
  이 아래에서 부터는    화면이 심히 우편 되어 있는데
  제 재주로는  바르게 할 수 없어  그대로 보내오니
 
   화면 아래 스크롤 바 ( 조절 바, 긴 막대)  우측으로 이동 요.
 
 

홍련암 바닥의 구멍을 통해 바라본 관음굴과 일렁이는 파도

 

 

                         낙산  일출   洛山 日出


 
2008.12.27 홍련암에서 바라본 해와 의상대


 

 

 
 
 
 
홍련암   紅蓮庵
 
 
 
 
정말 궁금했기에 꼭 한 번은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철썩이는 파도가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법당,
 
의상대사가 파랑새를 쫓아 들어가 7일 밤낮을 기도했던 곳,
 7 일 후 붉은 연꽃이 솟아나고 그 위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친견할 수 있었기에
 
그곳에 암자를 세워 홍련암이라고 이름 짓고,
관세음 보살님을 친견한 곳이기에  관음굴(觀音窟)이라고 불렀다는 그 곳,
 

홍련암

홍련암

  

 홍련암은 의상 대사가 본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장소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푸른 새[靑鳥]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했다.

 

이윽고 7일후 바다 위에 붉은 연꽃, 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의상대사는 드디어 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고 이름 짓고, 푸른 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觀音窟)이라 불렀다고 한다.

 

홍련암 관음굴

홍련암  벼랑 아래  관음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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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당 바닥에 있는 구멍을 통해서 내려다 본  관음굴
 
 
법당 바닥에서 미역 건져 올려 식사
 
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잠시 수업을 멈추고 여담을 들려주던 선생님께서
 꿀꺽하고 침이 넘어갈 만큼 맛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동해안을 여행하시던 선생님께서
바닷가 벼랑 위에 세워진 홍련암이라는 작은 암자에 들렸었답니다.
 
스님을 만나 뵙고 이런저런 좋은 이야길 듣다 보니 훌쩍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고,
끼니때가 되니 홍련암 스님께서 법당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기다란 갈고리를 넣어 싱싱한 미역을 끌어올려 미역국을 끓여주어
 맛나게 식사를 하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어찌나 맛깔스럽게 미역국 이야길 하시는지
여기저기서 군침을 넘기는 소리가 도랑물처럼 교실에 울렸었습니다.
 
 
 
 
관음굴 벼랑위에 지어진 홍련암
 
 
 
 
   

                 ▲ 법당 바닥에는 이렇듯 구멍이 나있습니다.

                      

        법당 바닥에  구멍을 설치한 것은  아마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사례.

 

 

 

미역 이야기는  수업 시간 중 학생들 졸음을 쫓기 위한  선생님의 창작이었을 것이고

법당 바닥의  이 구멍은  변화 자재한  관음 보살이  얼마든지 형체를 변화시켜  

  출입할 수 있는 통로로 만든게 아닌가 싶네요. 

 

     관음 보살이  발현하신 곳에 세워진  이  암자에  관음 보살이  수시로  변신, 들어

   오셔서  공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만든 통로.

 

   이건 신앙 상의  이유이지, 

스님들이  갈고리를 내려 점심때 끓일 미역을 낚아 올리려 만들었다는 

   블로거 님의 글은  아무래도 수긍하기가 힘드네요.

      

 

 

경주  인근  감은사  절  법당 아래 와   마당에  장대석 긴  돌들로

  구들장 처럼 만들어진 시설이   있는데  그  시설도  이와 같은  신앙에 토대한 설비.

 

 

  삼국 통일을 완성한 문무 대왕이  붕어하실 때   짐이 죽어  용이 되어 

 왜구들의 침입을 물리치겠다  하신  유지를  받들어

 

 

 동해 바다  대왕암에  산골 하고  감포 바다로 흘러가는  대종천 냇물이 

 감은사 절 법당 앞에 다다르도록  시설.  

 

 

 대왕암 동해 바다 물이 법당 앞 까지 연결되고 

법당 마당과  법당 마루 아래에도 구들장 같이

 

  장대석으로  설치 한 것은  

 

 

용이 되신  대왕이  이 통로로  출입하셔서

 

   공양을 받으시도록  한  신앙 상의  시설. 

 

 

 

 홍련암  법당 마루의 구멍과 일맥 상통한  사례.

 

 

서구 유럽 여러나라에도  똑같은 사례 많아.

 

성모 마리아 가   나타나신  성지에  성당을 지은 사례와  같겠지요.

 

( 관음 보살이 나타나심은 현신이라  하고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심은  발현 이라 하는데)

 

 

저 자신은  낙산사, 의상대는 주마간산으로  잠깐 보았을 뿐

홍련암, 관음굴 쪽은 가보지도 못 했고

그 곳 스님들 이야기 들은 적도 없지만

 

 

아무래도 미역 건져올리는 시설은  아닐 것이고

위와 같이  해석 합니다만 

물론  절대 옳다고  고집하지는 못 하겠고

단지 저의 추측입니다.

 

 

 
 
법당 구멍으로 내려다 본
 
파도가 부서지는  관음 굴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연꽃피어오르리(찬불가)

 

 

청아한 한줄기 애 연꽃이 피어오르니

만다라 화 향내음이 시방 세계두루하네

그향기 맡는이는 마음마다 연꽃피어

사바애 속진번뇌 모두다 사라지고

이르는 곳곳마다 연화장 세계로세

아~연꽃이여 청아하고 아름다워라

내마음 연꽃같이 영원히 피어나리

 

 

중생 애 무명번뇌 무시겁 내려오며

한없이 쌓이여서 본래청정 있었다네

연꽃 애 피어남은 천진모습 일깨워서

깨끗도 더러움도 가까이 아니하고

자신의 본래마음 그대로 지켜주네

아~연꽃이여 청아하고 아름다워라

내마음 연꽃같이 영원히 피어나리

 

 

 

 

출처 : 부처님 나라
글쓴이 : 가을영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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