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 만다라 새김전
2009년 2월 18일 - 24일 인사동 한국미술관
원광대 김수천
무의식의 표현
만다라는 우주의 축소그림이다.
이것은 대상화된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통해 본 우주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영옥의 작품은 언뜻 보기에는 채색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린 것 같아 보이는 빽빽한 화면 전체가
돌의 새김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름과 아호를 돌에 새기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전각가였다.
그러던 그가 만다라의 세계로 깊이 빠져든 것은 1년에 불과하다.
그는 미술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공모전에 그림을 출품한 적도 없으며, 그림이라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동화를 지도했을 뿐이다.
지금 주로 사용하는 분채기법을 익힌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현재 김영옥의 작품은 대중으로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애호층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그의 만다라 작품에 대해 용기를 불어넣어준 분은 사경(寫經)을 지도해준 이윤용선생이시다.
“너 좋은 것 해라”는 말이 큰 격려가 되었다고 한다.
학문적인 견지에서 처음으로 의미부여한 사람은 미술사가 강우방 선생이시다.
강우방 선생은 지난 해 12월 3일
원광사경연구회전 개막식 날 오셔서 김작가의 작품을 가장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그것을 인연으로 선생으로부터 평문을 받는 영광을 얻게 된다.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에게 시대의 안목으로 불리어지는 미술사가가
주저 없이 감동의 시선을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의식의 탐구”라는 타이틀로 쓴 평문 첫머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흔히 작가는 작품 구상을 한 후 작품 제작에 들어간다.
스케치를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한 후에 작품을 만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애초의 것과는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겠다.
김영옥은 백지 상태에서 작품을 시작한다고 했다.
…
말하자면 무의식에서 출발하며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작품이 형성될 것인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다.”
위에서 말하고 있듯이, 작가의 작품제작과정은 철저히 무의식에서 출발되어지고 있다.
바로 이점이 작가가 새로운 기법과 새로운 세계를 표현하는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의 첫 작품은 <반야심경>을 새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300개나 되는 돌을 구입하여 돌 하나 하나에 경문 한 자 한자를
사람의 얼굴로 생각하고 표정을 살려 새겼다.
바깥출입을 금하면서, 270개나 되는 돌에 글귀를 다 새기고 그것을 화선지위에 찍었다.
그것을 찍는데 소요되는 시간만 5시간이 걸렸다.
주저앉을 정도로 고통의 시간들, 그러나 김영옥은 이 기나긴 고통이 육체의 수련과정이며,
법희(法喜)를 위한 준비과정임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 희열과 감동은 끊임없이 새기고 찍는 것을 반복하는 긴 여행을 하게 한다.
그의 만다라 작품은 언제나 중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주변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그것은 만다라그림의 공통된 현상임을 강우방 선생은 평문에서 지적하고 있다.
섬광처럼 스쳐가는 생각을 포착하여 그것을 돌에 새기고 찍는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의 작업이 끝나면, 다시 상(象:이미지)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문득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파서 찍고 하는 반복행위를 거듭하는데,
더 이상 찍을 곳이 없을 때에 이르러 비로소 한 점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때의 희열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이 쉬지 않고 이어져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멈추어있을 때도 있다.
그렇게 다음에 할 일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미완성의 그림을 걸어놓고 거기에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바라본다.
서서, 앉아서,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그림을 응시하며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으며 작품에 말을 건넨다.
그러다보면 꿈에도 생각 못하던 것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다.
21세기 종교의 화두로 불리어지는 “자문자답(自問自答)”이 신기하게도
김영옥의 작품제작행위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제작과정 중에는 일반 작가들이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의도성과 개성 표현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전통 서예와 전각을 익히면서 선생들로부터 들어온
“뜻이 붓보다 먼저라는 의재필선(意在筆先)”이나,
“가슴속에 구상이 있어야 한다는 흉유성죽(胸有成竹)”같은 계획성과 의도성이
전제된 예술이론은 그의 작품제작기법과 전혀 무관하다.
작품을 할 때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텅 비운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때 작가는 신의 임재(臨在)를 기다리듯 조용히 침묵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완전히 비워진 적연부동(寂然不動)한 상태가 되면
마음에서 은밀한 감응(感應)이 일어난다.
그럴 때면 바람에 몸을 맡기는 돗단배처럼 누군가에게 손을 맡긴다.
그때 작가는 고도의 몰입상태가 된다.
작가가 무의식으로부터 작품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도장을 반복하여 찍는 공간이 한 치도 부족함 없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에서도 발견된다.
신비스럽게도 한 번도 인장을 찍는 공간이 남겨나 모자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작가를 이렇게 신비의 세계로 이끈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 발견, 자기치료
작가가 1년 가까이 작품에만 몰입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작품 출발 당시에는 개인전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작품에만 전념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업실에 칩거하기 이전에는 사람과 사회와의 만남이 갑자기 복잡하게 느껴지고
어떤 때는 인연들에 대해 증오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작업에 몰두하면서 그러한 갈등문제가 남에 의해서 출발된 것이 아니라 자기문제임을 발견한다. 그때부터 가슴속으로부터 눈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밖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래서, 일체를 끊고 작업실을 지켰다. 작품을 하기 전 정한수를 떠놓고 하늘에 예(禮)를 올렸다.
수시로 기도하고 참회하는 중에 마음이 맑게 정화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생전 보지 못했던 화려한 색상과 완벽에 가까운 구도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황홀, 빛, 선경(仙境).
그러면서, 작가는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또 다른 나,
더 크고 장엄하고, 굳건하고, 능력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로부터 이기적인 생각, 삿된 생각이 멀어지기 시작했고,
육식까지 끊고 사찰음식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재계(齋戒) 생활은 역대로 사경과 불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작업에 들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쳤던 통과의례이다.
다만 김영옥의 체험이 옛 어른의 것과 조금 다른 것은 누구의 교육이나 지시 없이
스스로가 선택하여 자연스럽게 재계(齋戒)의 생활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혈통과 수련
만다라가 무의식에 바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가가 세상을 살면서 보고 들은 생각과 연마한 기법 역시
작품을 이루는 중요한 성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작가는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문집과 문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기도 모르게 학문적 분위기를 몸에 익혔고, 선대(先代)할아버지 가운데
전각을 잘 해서 고종(高宗)으로부터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칭호를 받은 분도 계시다.
이름은 김종일. 그 분께서는 경북 군위군에 사시다가 전각을 잘한다는 소문이 궁중에까지 알려져
경북궁 상각수(上刻手)로 추대되어 각을 지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유전적인 혈통, 그리고 다년간 익힌 서법과 전각과 깊어지기 시작한 유불도 경전공부도
작품의 탐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임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잠재된 에너지를 심층 깊은 곳에서 내화(內化)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전이 주는 의미
“김영옥만다라 새김전”은 작가의 첫 개인전이면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전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김영옥의 작품의 색감과 표현은 한국의 어느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작품들은 모두 돌에 경문이나 문양을 새겨 찍은 것으로서 이것은 전통전각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현대전각이나 현대미술에서 시도된 적도 없는 새로운 쟝르에 속한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 흔히들 티벳, 인도적 색채가 농후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곳에 가본적도 없고 그곳에 대한 지식도 쌓여있지 않다.
이와같은 형태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가?
근대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미술에 있어서의 개인주의 사조는
지나치게 자아와 개성을 강조하고 특별한 의도성을 중시했다.
그로인해 천재작가가 생기고 미술에 있어서도 영웅이 탄생되기 시작한다.
무의식에 바탕하여 작품을 생산한 김영옥의 만다라전은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자아, 개성, 의도성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다 비운
허정(虛靜)의 상태에서도 꽃피워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20세기 미술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미술이
선사미술이라고 하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사인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다양한 서적과 지식정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사인들이 남긴 유물은 결코 후대에 비해
조형의 표현방법이 초라하거나 단조롭지 않으며, 창의적 상상력 면에서 오히려 뛰어나다.
여기에서 우리는 후천적인 경험과 지식만이
좋은 문화를 생산해내는 바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험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물의 세계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철새는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때가 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먼 길을 향해 집단으로 위치이동을 한다.
연어는 한동안 태평양에 살다가도 산란기가 되면 한 마리도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하여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귀환한다.
이들에게는 학교교육도 없고 사실을 설명해줄 문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정확하게 목표한 길을 간다.
동물들은 그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온 선험(先驗)에 의지하며 사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동물만이 이러한 선험적인 능력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들도 선험적 능력으로 살 수 있다.
그것이 쓰나미 지진해일에서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살아남은 원시부족은 대자연을 읽는 선험적 감수성을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천재지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은 인간이 배움에 의존하지 않고도 알고 있는 선천적인 능력이 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선험의 세계가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
이로부터 창조적 예술의 문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옥 만다라 새김전”의 가장 큰 의미는
후천적으로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대형 창고가
나에게 실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준다.